🌳#지숲신간코너|5월 2주차📚
‘랜드마크’ 너머의 이야기
🧭 여행의 시간
출판 #모래알
글·그림 #소연정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일단 여행지를 정해야겠지. 숙소와 교통편도. 그 지역 맛집 리스트를 뽑아 무얼 먹을 것인지 정해야 하고, 어딜 둘러볼 것인지도 체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곳은 내가 상상하던 곳일까? 거기서 나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여행은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행위.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지역 바깥에서 완전히 다른 환경을 마주하는 일이다. 밖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시야는 확장된다. 익숙한 것이 더는 없는 곳이므로. 나를 더 넓게 확장하는 일에 랜드마크를 둘러보는 것이 꼭 필요할까? 이 책의 화자는 그 질문에 ‘하지만’으로 대답을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물안개를 만났어. 이른 아침 물의 도시에는 수로마다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어. 멀리서 뱃사공들의 노랫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어. 눈 깜짝할 사이에 신비한 세상이 되었지.」
화자는 베네치아, 로마와 같은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꼭 가보라고 말한 랜드마크에 간다. 사람들이 재잘거리며 공간을 둘러보는 환희를 본다. 동시에 그 랜드마크가 없는 공간에서, 아주 다른 경험을 한다. 새벽의 베네치아 뱃사공들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로마의 길목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아주머니를 만난다. 아름답고 황홀한 랜드마크를 둘러보는 화자를 포함한 사람들과, 같은 도시에서 완전히 다른 공간을 점유한 화자를 그려낸 그림은 따뜻하게 아름답다.
유명한 곳에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베른에 간 화자는 딱히 챙겨 보라는 게 없자 여기저기를 느릿느릿 걸었다. 그러던 중,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야.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어. 그 순간 시간이 멈춰 버렸지.」
여행은 이런 것 아니겠니,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여행은 어떤 장소를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간을 살아보는 것.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낯선 나를 마주하며 매 순간을 애틋하게 여기는 시간을 살고 돌아오는 것. 나는 이제, 이 책의 제목이 ‘여행의 시간’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떠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는 여행에 지친 사람들, 아무튼 여행을 사랑하는 모든 방랑자에게 이 책을 전하고 싶다.
🎅🏻 메리 크리스하우스
출판 #안전가옥
글 #김효인
믿고 읽는 안전가옥의 『메리 크리스하우스』는 제목답게, 작년 12월 25일 초판이 발행되었다. 책을 펼치면 다가오는 여름 속, 눈으로 잔뜩 뒤덮인 제주의 작은 마을, 삼해리의 크리스마스로 바로! 떠날 수 있다.
「역시. 크리스마스에는 결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p.43.
제주의 삼해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던 사장 부부는 제주 시내로 나가게 되어 그들 대신 민박을 운영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만난 지원자. 화려한 경력에 스펙도 완벽한 호텔리어 구이준이 제주의 외딴곳에 숨어 있는 민박에 입사를 지원했다. 이런 사람이 왜 갑자기 제주도에? 그것도 이렇게 작은 민박집에? 질문에 이준은 빚을 지지도, 범법을 저지르고 도망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지원자 중 가장 멀쩡한 사람, 그를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합격.
이준은 얼마 전 제주로 전입신고까지 했지만 아직 이 마을에 익숙진 않다. 사람도 몇 없는 마을,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좋겠으나 말처럼 쉬운가.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친누나의 친구 제인. 제인은 이곳에 매년 크리스마스면 삼해목장의 말을 한 마리씩 죽이는 ‘살마(馬)마’가 있다고 한다.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마잖아. 말은 말을 못 해. 그렇다는 건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건. 오로지. 나의 이 타고난 상상력뿐이라는 거지.」 p.70.
제인은 방송작가 일을 하다 때려치우고 무직의 소설가 지망생이 되어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제주 삼해리로 잠입했다. 잠입이라기엔 너무 눈에 띄는 (괴물처럼 보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수트를 입고 등장하긴 했지만. 산타가 죽였다는 괴담까지 떠도는 삼해리 크리스마스의 살마마 잡기 대작전.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떠난 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이 책은 제주의 말이 남긴 이야기를 추적하는 이야기, 누구나 아는 아름다운 제주 풍경 너머에서 어떤 존재들이 좌충우돌 살아가는 이야기다.
「원래 말 못하는 존재들이 아는 세상이 따로 있다. 그러니 당신들이 아는 세계가 전부라 믿지 마라.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p.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