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숲신간코너|7월 2주차 📚
보통의 공포
👨👨👧👦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출판 #자음과모음 @jamobook
글 류현재
이미 죽음의 목전에 놓인 어미와 아비의 말, 비극으로 시작한다. 이보다 더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을 수 있나, 싶은데 책장을 넘길수록 지옥이 펼쳐진다. 가족이기에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고,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언제나 타인인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며 혼돈의 카오스로 들어선다. 타인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책은, 과거의 가부장적인 가족에서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가 겪는 끔찍한 결말들을 마주하게 한다. 찰떡처럼 찰지게 살라고 어려서부터 손수 만들어 먹인 찹쌀떡. 그 바람대로 바르게 커서 공부도 척척 잘했던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되었고, 가장이 되었고, 찹쌀떡을 맛있게 먹었던 때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을 갖게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아이들은 이제 각자의 직장에서, 동네에서, 자기가 낳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온갖 일을 마주한다. 부모는 그 아이들이 어른이,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나머지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타인은 지옥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침투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타인은 지옥이 된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신마저 타인이 되므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고, 지긋지긋한 족쇄가 되어버린 가족에 대하여. 이 책은 그 사이사이 비수처럼 꽂혀 있는 사건과 오브제들을 날카롭게 발견해 섬뜩하게 그려냈다.
「나무가 피를 흘릴 리 없는데, 나무 아래 수북하게 쌓여 있는 자줏빛 꽃잎들이 피처럼 섬뜩하게 보여 김현창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p.57.)
김영춘과 이정숙 가족이 지옥으로 들어서 기어코 어미와 아비가 죽음 목전에 놓인 데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시청의 국장까지 했던 김영춘, 애들 하나하나 똑 부러지게 키워온 이정숙, 얼마 전 이혼 후 집에 들어와 아픈 이정숙을 모시는 김은희, 장손으로 공부도 잘해 의사가 된 김현창, 맏딸로 교사가 되어 결혼까지 잘 해 안정되는가 싶더니 자식 일을 해결하느라 미칠 지경인 김인경, 공무원 시험에 열 번은 떨어진 막내 김현기. 이들의 관계가 처음부터 그렇게 지긋지긋한 족쇄이기만 했을까.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 적 없을까.
「“다 틀려먹었어. 그게 왜 옛날 일이야. 우리가 가족이었을 때, 지들이 우리 자식이었을 때, 우리가 지들 부모였을 때, 바로 그땐데.......”」(p.202.)
🛍 살인자의 쇼핑목록🔪
출판 #네오픽션
글 강지영
「나는 그들이 두려우면서도 사랑스럽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소설가인 그와 내 공통점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해부하는 것이다. 우린 같은 취미와 관심사를 가진, 어쩌면 같은 부류의 사람일지 모른다.」(p.15.)
각 단편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오싹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셜록 홈즈 뺨치는 할인마트 캐셔 차은지(「살인자의 쇼핑목록」,p.9.), 영적인 촉이 가득한 교수님 예슬(「데우스 엑스 마키나」,p.47.), ‘고양이는 덤덤해야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고양이(「덤덤한 식사」, p.105), 캐릭터가 죽으면 그 숫자만큼 사람이 사라진다는 ‘러닝패밀리’ 게임이 유행하는 시기의 고등학교 선생님 다영(「러닝패밀리」,p.9.), 빨리 죽기를 바랐지만 다시 태어난 노인 이룸(「용서」,p.159.), ‘개는 인권을 가져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똑똑하고 리더십있는 반장 태현(「어느날 개들이」,p.185.), 증조할머니께 오래전 작은할아버지 석삼을 따라온 각시 이야기를 듣는 손자((「각시」,p.219.)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더운 여름, 그들의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보통의 일상에서 불현듯 등장하는 공포에 잠깐 얼어붙을지도 모른다.
참, 이 책은 꼭 이불 속에서 넘겨보자.